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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13계단" : 사형수가 처형대에 오르기까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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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13계단" : 사형수가 처형대에 오르기까지.

Bakeee 2016. 6. 21. 22:49

[일본 추리소설, 애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다카노 가즈아키 "13계단" 리뷰, 독후감 - 사형 제도 존폐 문제에 대하여.



13계단은 대학교 1학년 때 수강한 강의 ‘범죄와 사회’에서 알게 된 추리소설인데, 일본 추리작가 협회에서 주는 문학상인 ‘에도가와 란포 상’ 제 47회 당선작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작품이다. 사형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구성과 추리소설 형식으로 술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13계단이란 : 사형선고 판결을 받은 화자가 판결 이후 집행까지의 절차가 13가지이기 때문에, 이를 처형대를 오르기까지의 13계단에 비유한 의미 있는 단어이다.


이 소설의 주 소재가 바로 사형제도이기 때문에, 읽는 동안 ‘범죄’와 ‘사형제도’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형제도 존폐논란’은 토론의 단골 주제였다. 우리나라는 1997년 마지막 사형 집행 이래로 더 이상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도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제도는 법률상 유지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사형제도 찬성의 입장에 서왔는데, 물론 요즘도 ‘과연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은 흉악 범죄자들에게 안타깝게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똑같은 입장이다. 그렇지만 책의 등장인물 교도소 간수 ‘난고 쇼지’가 사형 집행에 관여하며 겪은 고뇌를 읽으면서, 사형 집행의 존폐 논쟁에 있어서 간수들의 아픔 또한 꼭 한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간수들이 사형 집행을 끝낸 후 술을 마시며 괴로워 하는 장면이 또 생각난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라고 흐느끼자, 동료는 ‘뭐? 사람을 죽인 건 그놈이야.’라며 서로를 위로해주는 인상 깊었던 장면. 그들의 복잡한 마음이 난고의 서술에도 담겨있었다. 아무리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이고, 응보에 맞는 처벌과 정의를 행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살아 숨 쉬는 한 ‘인간’을 죽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난고는 말했다. ‘형장 밖에서 같은 짓을 하면 자신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져도 이상할 게 없다.’라고. 그 무시무시한 말이 간수들의 고뇌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난고는 준이치에게 사형제도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라고 말하는데, 나 또한 통계자료를 통해 사형제도가 범죄 억제 효과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범죄와 사회 강의시간에서 배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범죄 억제 효과를 가지지 못하며, 간수들에게도 심리적 충격을 가져다 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사형제도는 마땅히 폐지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사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사형은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배상이 될 수 있다. 나를 비롯한,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쪽들의 의견을 보면 범죄자의 생명의 존엄성보다는 '똑같이 죄값을 치러야 해!'라는 마음이 앞선다. 사무라 교스케의 아버지가 상해 치사 죄로 낮은 형량을 받은 준이치를 사형대로 보내기 위해 일을 꾸민 것 또한, 준이치에 대한 약한 처벌이 정신적으로 배상을 해 주지 못해서였으리라. 그리고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 기독교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주님과 함께 한다고 말했을 때, 그 억울함과 분함에 하나님을 저주한다. 사무라 교스케의 아버지, 또 영화 속 전도연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사람이 제때 밥 먹고 햇빛을 보며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유족이 처벌을 반대했던 160번 사형수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160번의 사형은 누구를 위해 집행되는가? 라고 의문을 제시했던 난고의 생각은 피해자에게 정신적 손해배상이 되지 않는 사형에 대한 고뇌를 잘 보여준다. 




또한 '사형' 판결은 전지적 존재가 아닌 '실수'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내린다. 때문에 우리는 사형수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수 있다는 가정도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소설 '13계단'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이러한 '정확한 판결의 한계'를 보여준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난고가 받은 준이치의 편지는 이제까지의 진범추적과정에서의 흥미로움에 비할 데 없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준이치가 ‘개전의 정’에 대해 난고에게 의문을 품을 때, 나는 단순히 그가 살인할 의도가 없었던 ‘상해치사’ 죄였기 때문에 2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했다. 그리고 어쨌든 엄연히 사람을 죽인 것인데도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준이치의 태도가 느껴져 그에게 약간 실망했었다. 그러나 준이치의 편지를 본 후, 그가 교스케를 죽인 것에 대한 뉘우침이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실 사무라 교스케를 죽일 의도가 있었던 준이치는 오히려 술집에서 먼저 교스케를 만났기 때문에 운좋게도(?)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 죄를 적용받을 수 있었다. 피고인에게 살의가 있었다면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가 되므로 그 형량은 굉장히 높아진다. 그러나 준이치는 그에게 살의가 있었다는 것을 숨겼고, 의도한 죄를 범했을 시보다 훨씬 적은 형량을 선고받았다. 준이치가 개전의 정이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판단 가능하냐며 난고에게 의문을 품은 것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그를 죽이려는 의도가 있었어. 그런데 당신들은 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나에게 적은 형량을 내렸지.’ 하며 사법절차 과정에서의 허점을 비웃는 질문이었으리라. 


범죄와 사회’시간에 배운 형사사법절차 내용 중, 중국에는 ‘사완제도’라는 것이 있어 사형수들이 모범적으로 행동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들의 형을 무기형으로 감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 그 당사자가 되지 못하는 이상, 그가 반성하지 않으면서 감형을 위해 연기를 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또한 무기징역으로 감형될 경우, 10년이 경과되면 가석방이 되기 때문에 만약 그동안 반성한 것처럼 연기를 해왔던 ‘사이코패스’인이 살의를 가진 채로 사회에 나올 위험 요소도 있다.




이처럼 범죄자에게 사형 제도를 적용, 시행하는 데에는 많은 것들을 고려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소설 '13계단'에서 나온 것과 같이 사형 제도 시행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더불어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인 '법과 정확한 판결의 한계'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무고한 희생자 문제 등이 얽혀있는 논제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범죄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고, 피해자에겐 합당한 보상을 내리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일본 추리소설, 애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다카노 가즈아키 "13계단" 리뷰, 독후감 - 사형 제도 존폐 문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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